황토의 세상탐욕하기

사진, 이야기, 그리고 삶.

New Reality I: 스마트폰과의 관계

New Reality I: Relationship with Smartphone

21 November 2012

Washington DC

chihoonart.com

땡쓰기빙 주간을 맞아 미국의 수도에 놀러왔다.

친구와 백악관을 구경 한 후 커피를 한 잔 하기 위해 길을 걷다가

줄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신기한 건 모두들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었다.

미국의 문화 속에서 줄에 서 있을 때 모르는 사람 일지라도 앞 뒤 사람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농담도 주고 받는 것이 흔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마트 폰 사용에 보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생각하는 시간들, 대화하는 시간들,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시간 들 등을 빼았겼는가.

반대로 우리는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 혹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과

스마트 폰을 이용해 소식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맺고 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늘 가족과 친구들과 같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폰을 이용해 사진을 보내고, 메시지를 보내며

소식을 빠르게 주고 받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진 시리즈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오늘의 경험을 계기로

최근에 우리 삶에 새롭게 자리 하고 있는  “New Reality”를 시작해 보려 한다.

우리에게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무엇이며,

무작정 주어진 기능에 기대기 보다는

어떻게 건강하게 사용해야 하는 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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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아. #03 – 호기심.

 

(2012년 8월의 마지막 날 자주가는 카페에서 찍은 사진, 제목: 호기심)

호. 기. 심.

사랑 만큼이나 삶을 설레이게 하는 단어.

때로는 그 무모한 면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은 도전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맛 볼 수 있게 해주는 지룃대다.

내가 사진을 찍는 것도 모두 호기심으로 날 뛰는 심장의 간절함을

눈과 손가락이 풀어 주는 것이다.

2010년에 “가장 행복한 사람들” 이라는 뉴욕 타임지 기사를 우연히 보고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코스타리카라는 나라를 무작정 다녀온 일이 있었다.

도전이었고, 열정이었다고

그래서 너무나 값지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수없이 말하고 다녔지만,

그 도전과 열정의 씨앗은 마음에 품었던 작은 호기심 하나였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홀로 떠나는 배낭여행의 매니아가 된 나.

호기심은 단순히 어떠한 궁금중에 대한 가려움을 긇어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기대치 않은 곳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해주는 감춰진 동굴의 등불이 되는 것이다.

내가 계획하고 해야 할 일들만 바라보는 것 만이 아니라

주변을 잘 둘러보고 작은 것에

더욱이 나와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것에

잠시 시선을 두고 궁금증을 가져보자.

그러면 풀 잎으로 내는 피리소리에 춤을 출 수도

우연 만남의 사람으로 부터 내 눈망울을 촉촉하게 적실만한

한 예술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사.인.아. 002 – 아이들은 왜

 

아이들은 그 모습 자체로 참 순수하다.

꾸밈이 없고 거짓이 없다.

심지어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표시가 난다.

그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영특하기 때문에 그들의 거짓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면서, 꾸밈과 거짓의 기술도 점차 늘어난다.

상처를 막는 보험이다.

순수하면 상처 받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젠 순수함도 전략이 되어 버려

누가 순수하고 누가 불순한지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론 저 아이들 처럼 아무것도 가림 없이 자유라는 들판위에 내 영혼을 풀어 놓고 싶은 것이다.

살아가는 전략이 사회 속에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 수는 있다.

거리낌 없는 자유와 존재 자체로의 받아들여짐은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 보다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너무 사회 속에서 살아남는 전략에만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다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유와 순수함을 배우는 건 어떨까?

2012.8.25.토요일 오후

치훈.

 

사.인.아. 001 – 내가 카페에 가는 이유

사.인.아. (사진으로 보는 인생의 아름다움) 그 첫번째 이야기 – 내가 카페에 가는 이유.

매일 가는 카페가 있다. 학교 앞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로얄 카페.

터키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코르타도(스페인식 라떼,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1:1로 배합해 커피 맛이 진하다)를 시킨다.

주문 받는 덤(매장에서 일하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고, 오늘은 날씨가 좋아

카페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내 샌드위치를 두 배로 크게 해 달라고 농담을 건넨다.

옆에서 페스츄리를 정리하던 레이첼이 큰 소리로 웃는다. 늘 이들과의 유쾌한 대화로 카페에서의 시간을 시작한다.

구석진 자리 그러나 카페 전체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할 일 (레포트 쓰기 등)을 하기 전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 때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 혹은 서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

일에 집중하는 사람.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

유쾌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

다양한 삶 들 속에 다양한 아름다움이 숨쉬고 향기가 흩뿌려진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다양한 모습으로 전해주는 삶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많은 감동과 환희를 주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 보다도,

그저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삶들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살아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위로를 받는다.

또한 내 모습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삶의 아름다운 한 부분을 들려줄 수 있다면,

참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2012.8.25.토요일

치훈.

……..

뒷담화:

모처럼 한국어로 글을 쓰자니 참 안써진다. 역시 글도 매일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흠… 

쉼. 그리고 숨.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에서 ‘쉼’을 누리고 있는 한 커플.

쉼.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쉼이 필요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남미 여행을 하면서, ‘쉼’이란 우리가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가운데 잠시 멈춰 재 충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누려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너무나 목표에 맞춰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목적지에 도달하기위해 ‘쉼’을 포기하고, 또는 ‘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어느덧 쉼이란, 지친 한숨을 내쉬며 삶의 힘듦을 호흡에 담아 토해내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맞다. ‘쉼’이라는 말 자체에 ‘쉬어간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니, 지금 하는 이야기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럼 ‘쉼’이라 하지 말고, ‘숨’이라 하자.

가쁜 숨이 아니라, 울던 아이가 고이 잠들어 내쉬는 그런 평온한 숨..

삶의 모든 짐과 생각, 고민을 내려 놓고, 그 호흡하는 삶 자체로 의미있는 그런 숨을 쉬는 시간.

우리에게 지금 ‘쉼’이 필요하다면, 그건 어쩌면 ‘숨’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2012년 5월 7일 월요일.

세상탐욕하기.

의미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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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아침 6시 50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주의 작은 마을 ‘엘 칼라파테’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친구들과의 바릴로체 여행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크리마스파티를 뒤로 하고 홀로 떠나기로 결정한 여행. 이번 결정에는 많은 의미가 따른다.
그동안 한번도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낸 적이 없다. 내겐 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했고, 난 그 가운데에서 행복했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전에 지구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 ‘우수아이아’로 간다. 거기서 크리스마스와 나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무엇이 나를 이러한 결정을 하도록 했을까? 그건 의미 때문이다. 삶의 의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고 선호하는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니 그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 나와의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난 이번 여행을 통해 지난 4개월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성찰 할 것이다. 또한 남부의 작은 마을 들 속에서 자연 앞에 한 없이 작아짐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의 창조물들로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 조물주의 창조물이 상처받지 않고 남아 있는 곳에서 진정한 내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 진짜 나를 아는 것은 여러 기준, 관념, 문화가 난무하는 곳에서 보다는 한 가지 기준, 자연 앞에 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나를 어떻게 맞아 줄지는 모른다. 그리고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대로 절대 시간이 흐르리리고는 생각 안한다. 그건 내 여러 여행경험을 통해 얻은 사실이다. 여행 가기 전 두려움과 기대감은 여행지에서 첫 숨을 들이쉬는 순간 부터 없어지고, 전혀 새로운 것이 호흡이 되어 내 몸과 마음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의미를 찾는 여행’ 은 구체적이지 않아 모호하면서도 사실은 더 사실적이다. 그 의미란 그 곳에 발을 내 딪는 순간 부터 발을 떼는 순간까지 찾아가는 것이니까. 이제 출발이다. pura vida

진정 필요한 연습

3개월 전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매력에 푹 빠져든 나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2월 1일 아카데미 축제 때 파트너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와 잘 맞았던 아구스티나와 함께 두 곡을 추기로 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재미로 출 때는 서로 조금 실수 하는 부분이 있어도 웃어 넘긴다. 그러나 정식 행사에서 하는 춤이다 보니 시나리오를 짜야 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실수를 하지 말야 한다. 다음 주 목요일이 행사 날인데, 서로 학교 학기말 시험과 과제 때문에 지난 주 한 번 밖에 연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연습을 할 때 지난 주에 연습했던 것 조차 잘 맞지 않았다. 그 사이에 둘 다 잊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남자의 책임이 더 크다. 왜냐하면 남자가 시나리오에 맞춰서 암기한 스텝을 여자 파트너에게 안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연습이지만 오랜만에 하는 거라 처음에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구스티나가 더운 날씨 때문인지 짜증을 많이 냈다. 내가 실수 하거나 자신이 맘에 들지 않는 동작이 있을 때면,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을 내가 한국인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답답해 했다. 나도 자존심이 상해서, 얼굴에 좋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중간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속에서는 수 업이 우리가 이 번에 두 번째 맞춰 보는 거고, 그동안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연습을 위해 참아야 했다. 그러나 결국 나도 기분 나쁜 감정을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들어 냈고, 결국 연습 하면서 호흡은 더 맞지 않았다.

탱고는 그 춤을 추는 순간 사랑하지 않으면 춤을 출 수가 없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춤을 춰야 한다면, 그 순간 만큼은 내 파트너를 받아 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그 마음 없이는 춤을 추는 것이 즐거울 리가 없고, 그것은 고스란히 내 몸의 움직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탱고를 출 때 10 스텝만 밟아 보면 상대 방이 춤을 추고 싶은지 아닌 지 알 수가 있다. 아구스티나와 나는 서로 되지 않는 연습 때문에 기분이 나빴지만, 당장 다음 주가 행사기 때문에 연습을 잘 마무리 해야 했다. 그건 서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틀어진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잠시 오디오를 끄고, 곡의 처음 부분 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다시 한번 맞춰온 시나리오를 차근 차근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연습. 그러나 나의 부족한 실려과 또 부족한 연습 탓에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없었다. 이 분위기를 업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해서 생각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전 보다 조금은 나아진 것에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의 연습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기분 나쁜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더 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지는 말자고 계속 다짐했다. 결국 약 1시간 반 여의 연습을 끝마쳤다. 그동안 한 번도 서로 감정이 틀어 진 적이 없었기에 연습이 끝나고 서로 어색했다. 사실은 서로가 감정이 상할 일이 아니었고, 그러길 원하지 않았었음을 표현하기 위해 괜히 더운 날씨를 탓하며 물을 나눠 마셨다. 그리고 포옹을 하며 잘 해보자고 인사를 했다.

오늘 연습을 통해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좋지 않았지만, 거기서 얻은 것이 더 많았음을 고백할 수 있다. 갈등은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갈등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나 역시 기분 나쁜 표정을 드러내기 보다는 위트나 유머로 그 순간을 넘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갈등의 순간에 건강하게 대처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1번의 행사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탱고 연습을 하듯이,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서로 다름과 오해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연습도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갈등’일 것이다. 이 ‘갈등’은 죽을 때 까지 우리 곁에서 떠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간관계의 ‘갈등’도 연습을 통해 완전한 극복은 아니더라도 건강한 대처가 가능하다. 그 관건은 우리가 이 삶의 중요한 부분에 얼마나 많은 비중을 두느냐와 얼마나 연습을 하느냐 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평생 연습을 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악기를 다루기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또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등 어떠한 일의 성취를 위한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사회 안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자기 실력 향상을 위한 연습은 많이 하지만, 정작 진짜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의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관계 속에서 ‘갈등’을 위한 연습은 소홀히 한다. 스스로가 성격은 원래 타고난 것이며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원래 그렇다.’라고 단정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성향이나 성격에 맞추 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또한 아예 나와 한 번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스스로 또한 계속 적으로 상처에 노출 되며 상처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대로 상대방을 알기 전에 오해와 편견으로 쉽게 상대방으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 성경의 잠언 4장 23절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버지가 나에게 늘 해주시는 말씀이다. 마음을 잘 컨트롤 하고 지켜야 관계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지키는 훈련은 우리가 갈등 속에 있을 때 정말 필요하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시간을 아껴 한 발 자국이라도 더 앞서나가야 살아남는 세상 속에서 이 마음의 훈련은 비 생산적이고 부질 없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난 반대로 생각한다. 오히려 오늘날과 같이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인간 관계가 많이 깨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마음의 훈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갈등의 위기 속에서 헤쳐나갈 힘을 발휘할 것이고, 이것은 일의 성취보다 더 큰 삶의 행복과 만족을 가까이 가져달 줄 것이다. 우리 삶이 정말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늘 간과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그건 우리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과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갈등과 오해의 순간을 슬기롭고 건강하게 대처하는 연습니다.

야구 선수는 자신의 스윙 궤적을 머리로 계산하고 스윙하지 않는다. 수천번 수 만번의 반복된 연습의 결과를 몸이 알고 있어 스윙 궤적보다는 날아오는 공에 신경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갈등의 순간을 만날 때 ‘연습’이 필요함을 생각하고, 인지하며 대처하려고 노력해 보자. 처음엔 잘 되지 않겠지만 차차 마음의 크기는 커질 것이며, 점차 갈등을 대처하는 궤적을 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이 그렇게 넓게 그리고 상대방을 포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건강하게 표현하도록 바뀔 것이다. 그러면 갈등 그 자체보다는 날아오는 문제의 핵심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릇 지킬 만한 것 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23

잡생각 #001, 몸 넘어 마음

(학교 정원에서 운동중인 나)

박찬호 같이 불혹의 나이를 앞둔 선수가 아직도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신체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쌓아 올린 마음의 능력 때문이다. 이 선수는 유명하니까 그렇다고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SK에서 다시 LG로 돌아간 박찬호 보다 1살이 더 많은 최동수 선수 같은 경우도 같은 이유 때문에 LG로 돌아가게 되었다.

운동 선수 들에게 자신의 육체적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는 최 적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고 한다. 그래서 프로 야구와 같은 종목에서는 그 나이 즈음 FA (자유계약제도: 이적료 없이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 자유롭게 이적 가능) 시장에 나왔을 때 가장 많은 몸 값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간추려 생각해 보면, 우리 몸은 30대 전 후로 해서 점점 쇠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을 80년 으로 보면 30살까지는 성장하고, 나머지 50년은 쇠퇴하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쇠퇴기로 접어 들어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어쩌면 몸보다 마음의 성장이 더디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타인과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몸의 성숙 보다는 마음의 성숙이 더 중요하기에 그런 것이리라. 즉, 우리가 몸의 성숙이 최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에 마음의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즘 나는 신체적 능력이 절정에 선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성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동안 몸은 많이 가꾸고 외적인 면은 많이 단련시켜 왔지만, 나의 내면의 모습은 방치해 둔 적이 많았다. 내 스스로가 신 앞에, 사람 앞에, 자연 앞에, 그리고 나 스스로 앞에 진실하기 보다는, 나의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신체적인 에너지를 극대화 하기 위한 노력을 마음의 성숙을 위한 노력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세상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마주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이다. 즉, 다른 관계들과 섞인 사회 안의 한 존재로서 그 사회가 평화를 회복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올바른 가치와 삶에 대한 순수성이 꺾이지 않는 겸손한 지혜이다. 이 지혜를 찾는 다는 건 우리에게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동안의 경험이나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장치로서의 내면의 힘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 성숙한 지혜를 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믿는 신을 더 깊이 사랑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내가 속한 사회와 나를 감싸 안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리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하는 것. 그리고 양보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품어주는 마음 등 우리 안에 깊은 성숙을 가져다 줄 우리가 아는, 그리고 알게 되는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고 담내야 하는 것이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육체적 혈투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이러한 마음의 성숙 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우리가 평화롭고 행복 할 수 있지 않을까? 평화와 행복은 나 혼자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나’가 아닌 ‘우리’가 필요한 것이고, 그 ‘우리’를 위해 ‘나’의 성숙이 필요한 것이니까.

2011.11.22.화

– 아침 샤워를 하며 내 몸을 너무 깨끗히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든 생각…

인간관계? – 성숙을 위한 내 성향의 담 넘기.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 과의 관계 속에서 보낸다. 어릴 적 부터 수없이 맺고 끊어진 이 관계의 연속성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 만의 관계를 맺는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어떤 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 보다는 자기와 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혹은 그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어릴 적 나는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다. 집에 손님이 오면 거실에서 열심히 TV를 보면서 동생과 장난을 치고 있다가도

내 방으로 들어가 손님이 가실 때 까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늘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 사귀지, 너는 왜 꼭 한 친구 하고만 놀아?’ 라고 묻는

적이 많았다.

대학교 1학년 첫 소개팅 때 맘에 드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색한 자리에 적응을 못해

주문한 주스만 마시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연락처도 못 물어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 온 적도 있다.

맞다. 나는 정말 내성적이었고, 내가 아는 익숙한 사람과 있는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고 장난도 잘 쳤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곳에서는 지독하리 만큼 조용했고, 그 상황 자체를 매우 어색해 하고 힘들어 했다.

사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엄마의 충고에 일리가 있다고 느껴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활발해 지기로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이 내 인관관계의 성향을 높은 담을 수없이도 넘으려 시도했지만,

벽에 손톱 자국만 낸 채 좀 처럼 넘지를 못했다.

나는 우리가 갖는 크게 3가지의 인간관계가 균형을 이루어야 삶에서 조금은 더 성숙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도 노력 중이지만, 그 믿음이 있었기에 내가 가진 담을 넘을 수 있었고,

그 믿음을 실천 함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얻을 수 있었다.

그 3가지의 인간관계의 시간이란,

나와 보내는 시간, 나와 원래 알던 이들과 보내는 시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다.

이것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나누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 3가지의 인관관계에 균형적인 마음과 에너지를 쏟는 데에 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외로워 친한 친구 만 찾거나,

기존의 친구들은 제쳐 둔 채 새로운 친구들 만 찾아 다니거나 하는 등의

한 쪽으로 편중된 인간관계를 탈피해서 균형을 갖추자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 올린 우리 자신에게 맞추진 각자의 담을 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혼자 시간을 보낸 다는 것. 즉, 나와 함께 있는 다는 것은 내 삶에 어떤 의미인가?’

‘나의 가족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본 다면

우리에게 그 담을 뛰어 넘을 용기가 생길 것이다.

홀로 시간을 보낸 다는 것은 앞선 포스트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외로움에 사묻혀 누군가를 갈망하는 시간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 처럼, 나와 함께 함으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책을 읽든, 일기를 쓰든, 커피를 마시든, 잠을 자든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편한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과 관계 함으로 그동안 나 스스로로 몰랐던 나에 대해서 발견하고,

내가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이제 그건 정말 내 삶에서 정말 값진 일이 되었다.

특히, 나와는 국가와, 언어와, 문화와, 배경이 다른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은

내 생각을 넓혀주는 귀한 시간이다.

그들과 소통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 가졌던 편견이나 오해의 각도 마모 시키고,

작은 울타리에 같혀 있던 어떤 관념이나 세상에 관한 관점도 넓힐 수 있다.

매일 하루 하루 살아가며 그 균형을 맞추려고 하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거기엔 기대치 않은 슬픈 경험이나 아픈 일도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성숙해 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 혹은 여러 경험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쌓아놓은

특정한 대상 (나, 가족, 친구, 혹은 새로운 타인) 에 대한 담을 쌓고 있다면, 그 담을 허물어 보자.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담 넘어에 있는 새로운 꽃 향기도 맡아보고, 처음 보는 동물의 똥을 밟을 지라도,

새로운 잎사귀로 혹은 그동안 내 곁에 두었던 담쟁이 넝쿨 한 줌으로 닦아 보자.

그리고 새로운 걸음을 떼자.

2011년 11월 18일 새벽.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곽 작은 마을의 낡은 건물 안의 내 방에서.

…….

오늘 난 손에 일기장을 들고 나가 지난 주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며 나와 시간을 보냈다.

탱고 수업에서 처음 만난 리투아니아 여행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방금 한 친구로 부터

페이스 북 친구 요청 메세지를 받았다. 그리고 탱고 수업에서 새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음 주 즈음에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로 오는 게 어떻겠냐고 초대를 했다.

저녁 시간에 원래 알고 지내던 인그리드 (노르웨이에서 탱고를 배우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왔다),

파올라 (멕시코에서 이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후안 (아르헨티나 사람. 한 오케스트라의 호르니스트다) 을

집으로 초청해 어제 담궈 좋은 불고기(유일하게 할 줄 아는 한국 음식)와 잡곡 밥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일상을 정리하기 위해 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오늘 포스트의 마지막 문장을 맺는다.

¡Pura Vida!

(파올라가 가져 온 아바나 초컬릿과 인그리드가 가져 온 노르웨이 초컬릿.

인그리드는 와인도 가져 왔는데, 덕분에 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억의 문으로 함께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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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 간다는 건…

어느 한 장소, 시간, 혹은의미.
그냥 지나치는 곳. 나에게는 관련이 없고
의미가 없는 곳 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장소, 시간, 의미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억을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잊혀지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문을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 홀로 들어서 있는
기억의 방을 가지고 있다.
거기엔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없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억의 방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곳에서 쓸쓸한 호흡으로 적막함을
채운다.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의 기억에 귀를 기울이자.
그동안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는 순간 상대와 나는
더욱 가까워 진다.
그 기억은 더이상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그건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된, 가족이 된, 혹은 더욱 가까워진
내 사람의 기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억의 문으로 들어가 그 문 안의
외로움을 채워 주는 것. (그건 그 사람의
기쁨일 수도 슬픔일 수도 있다.)
그 차가운 적막함을 따뜻한 마음으로
적셔 주는 것. 그렇게 우리는 기억을
나눔으로 가까워지고 친구가 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의미를 발견한다.

-2011년 11월 10일.
매일 지나치던 거리에 새겨진 한 가족의
아들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현장에 서서.